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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특별기획> 나는 왜 집총을 거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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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05.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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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윤영철 형제가 전하는 집총거부 신념
집총거부로 복역했던 윤영철 형제는 이경훈 형제를 떠올리며 "우리는 그런 양심과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기자 김범태
이경훈 형제를 생각하며...
신앙이라는 것은 마음에 관계되는 것이다. 내면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존재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종교, 신앙의 목적은 어떠한 존재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과 종교는 글자 그대로 으뜸이 되는 교육이다.

그러면 그 존재의 핵심은 무엇인가? 의지인가, 지식인가, 정서인가? 나는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그 마음, 그것은 사랑의 원칙이 심겨진 양심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신앙의 목적은 본래의 그 마음을 되찾아 전인적인 회복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그 마음, 존재의 중추에 심겨진 사랑의 원칙이 바로 양심이다. 물론 죄로 인해 망가졌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실체를 볼 수 없다.

죄라는 것이 모든 것을 어그러뜨렸으나 사람의 마음을 가장 더럽혔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에 대하 이해도 어그러졌다. 그러나 그 실체를 예수님 안에서는 볼 수 있다. 또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안에서도 그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예수님 안에 살아 있는 양심까지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을 거듭난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 즉, christian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개인의 주인으로 모시고 나서부터 내 양심은 꾸준히 계발되어왔다. 성경과 예언의 신. 그리고 기도와 같은 영적인 활동을 통해서 나의 심령에 빛이 비취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지능도 비슷하고 의지도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지만 양심은 예민해졌다.

그런 그리스도인 내 자신에게 군대에서 총을 잡고 강제훈련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양심이 가책이 되는지 몰랐다. 내 시간, 내 힘, 내 존재가 무력에 의한 군기라는 다른 주인을 택해야 한다는 압박에 내 양심은 크게 요동쳤다.

예수님이었으면 그렇게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분명 그것은 내 양심에 'NO'로 답하고 있었다. 성령에 의해 내 양심이 각성되고 양심의 음성에 따라야 함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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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 양심의 힘을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과 내 양심에 에너지를 넣어주시는 느낌이었다. 내 양심의 소리에 충실하게 행동한 이후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쉽게 말하면 더 양심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갔다 .작은 부분까지 하나님 앞에서라는 생각으로 살게 되었고 그것이 짐으로 다가오는 것 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이나 빛으로 여겨졌다.

재림교회의 비무장 전투요원의 원칙은 여호와 증인의 것보다 수준이 높은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율법과 복음의 조화를 강조하는 재림신자들은 얼마나 양심에 충성하고 있는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가치는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적어도 비무장 전투요원 원칙이 우리교단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이유의 근간은 재림교회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높은 경건의 표준과 영성의 깊이를 중시하는 재림교회의 정체성과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가 그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무장 전투요원 같은 문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다루려고 하지 않거나 피하려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치부를 숨기는 환자의 모습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과 영원성을 가르치며 율법의 복음적 기능을 가르치면서 양심의 문제를 피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신앙인의 양심은 일반인과 달라야 한다고 믿는 다면 또 복음이 사회 정화적 기능을 갖는 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이 문제에 대한 태도들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남은 무리다. 자부심은 수와 양에 있지 않고 고귀한 가치를 타협하지 않은데 있다 하겠다.

일반인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선교하는 데 문제가 된다거나 또한 나라와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고 하는 말들은 그럴듯한 말이지만 가슴 아픈 말이다. 안식일 문제에 관해서 우리가 그런 태도를 취해왔다면 안식일은 지구상에서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대해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강력하게 고수하고 전파해온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옳다는 것은 양심에 합당하다는 말이다.

비무장 전투요원에 경우도 그렇다. 그 정신과 가치를 알려고 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를 가진 보석인지 알려 줄 것이지만 그것을 방치하면 그것은 빛을 잃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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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경훈 형제를 생각한다. 그 양심의 가치, ‘이경훈’이란 사람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교도소를 가겠다고 하는 젊은이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이처럼 고귀한 정신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세상 사람들 다 자기 편한 길을 가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인데 말이다.

보통 젊은이 같으면 양심을 거스려서 라도 교도소에서 나오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배울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영혼이 그렇게 깨끗하면서도 강한 양심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그런 양심과 정신을 배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원래 우리가 지녀왔던 고귀한 양심과 가치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세워야 한다. 이것은 교리적인 문제일 수 있으나 정신과 양심에 관계된 문제이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다.

나는 이경훈 형제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하나님께 회개한다. 무뎌진 양심과 더럽혀진 양심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나의 죄를 보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에 감사한다. 그분이 원하시는 데로 꼴지워지기를 원한다.

그분께서 주시는 양심의 빛을 따르고 싶다. 그분을 닮은 존재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참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가 되고 싶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종말인으로서 신앙양심에 맞게 살기 위해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경훈 형제를 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저렇게 할 수 있는가?'
'내 양심의 순도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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